[시류칼럼] 의사들은 '닥터 지바고' 같은 휴머니스트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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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칼럼] 의사들은 '닥터 지바고' 같은 휴머니스트여야 하나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20.09.0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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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시사주간=주장환 논설위원]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닥터 지바고'의 주인공 유리 지바고는 휴머니스트다. 그의 꿈은 의술로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다. 러시아 혁명의 불길이 타오르던 때에 그는 한 차례 충격에 휩싸이게 되는데, 먹을 것을 달라는 노동자들의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정부군의 만행을 보고 나서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직접적으로 충격적인 봉변을 당하게 된다. 연인 라라를 만나고 돌아오던 길에 빨치산에 잡혀 의료봉사를 강요받게 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집에 돌아가지 못한 채 부상병들을 돌보는 그의 마음은 갈가리 찢어진다. 이것이 민중을 위해 혁명을 한다는 자들의 짓거리인가? 그 누가 제멋대로 한 인간을 억지로 붙잡아 놓고 마음대로 부리며 자유로운 삶을 통제해도 된단 말인가?

우랄산맥의 빙하는 인식의 모험을 촉발시킨다. 이 소설(영화)의 서사는 장엄하나 운명은 가혹하다. 부상병들을 치료하는 손길은 봉사의 마음이 박혀 있으나 정신은 피폐하다. 병든 자에게 의술을 베풀겠다는 정신은 타인의 강요나 종속된 자리에서가 아니라 자유의지에 의해서 이뤄져야만 가치가 있다. 인간이 고귀함은 그 속에서 만개하는 것이다. 지바고의 시(詩)는 바로 그래서 그의 삶을 구원한다. 그러나 인민위원회로부터 ‘부르주아의 방종 같다“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지바고의 정신세계는 전체주의자들에 의해 짓밟힌다.

필자의 5촌 아저씨뻘 되는 분은 이 영화를 보고 의사가 되기를 꿈꿨다고 했다. 의사라는 직업이 가지고 있는 고귀함이 영화를 통해 투영되었기때문이리라. 그러나 필자는 이 영화 속에서 의사로서의 권리나 요구, 선택권을 아무런 법적 권한 없이 일체 박탈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부적절한 이기심으로 치부하고 혁명을 위해 무조건 희생하라는 자들의 행태가 놀라왔다. 볼셰비키든 멘셰비키든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의사 파업을 두고 말들이 많다. 그들도 다른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파업을 할 수 있다. 의사들은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선택권도 없고 오로지 ‘봉사’만 요구당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대통령은 “전시에 군인이 전장을 이탈하는 격”이라며 못을 박았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지바고를 납치해서 의료행위를 강요했듯 국가가 이래라 저래라 통제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의사도 ‘유사군인’인 것일까? 물론 의사는 공익적 성격을 가지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같이 위중한 시기에는 환자부터 먼저 돌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공공재로 간주하는 것이 맞는 일일까? 이 와중에 더불어민주당이 “유사시 의료인들을 북한에 차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추진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의사들이 드디어 진짜로 공공재가 되어가나 보다. SW

jjh@economic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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